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조선전기 겹처마 우진각지붕 형태의 문(門). 궁궐문루.
개설
역사적 변천
영추문은 석축을 쌓아 홍예문을 내고서 위에 문루를 세운 모습으로, 1426년(세종 8)에는 남문을 광화문(光化門),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이라고각각 불렀다.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은 목책으로 설치하였다가 세종 때에 성문으로 완성되었다.
1427년에 수리하였고,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이 불타면서 없어졌다가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다시 건립되었다. 당시 영추문의 편액은 허계(許棨, 1798~1866)가 썼다.
일제강점기에 전차 노선을 부설(敷設)하면서 주변의 담벼락과 함께 철거되었다. 1975년에 원래의 자리에서 약간 이동하여 지금의 성문을 콘크리트로 복원하였다.
내용
아래의 석축에는 1칸의 홍예문이 설치되었고, 그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1층 목조 문루가 자리하고 있다. 홍예문의 천장에는 백호(白虎)가 그려져 있고, 2익공의 겹처마 우진각지붕을 올린 문루 안에는 북이 설치되어 있었다. 북쪽에는 외부의 물이 궁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수문(水門)이 있었고, 남쪽에는 암문(暗門)이 있었으며, 성문의 안쪽에는 궐내각사가 배치되었다.
1975년 지금 모습으로 복원된 뒤, 청와대 외곽 경호를 맡은 수경사 30경비단이 주둔하며 통재되었다. 2018년 통제 43년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순종실록(純宗實錄)』
- 『궁궐지(宮闕志)』
- 「북궐도형(北闕圖形)」
-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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