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옥여(沃余), 호는 성암(醒菴). 허현(許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성(許晟)이고,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허휘(許徽)이며, 어머니는 한광립(韓光立)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24년(인조 2) 호조좌랑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1636년 중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37년 우승지·경기도관찰사, 1642년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 해에 이경여(李敬輿)·이명한(李明漢)·신익성(申翊聖)·신익전(申翊全) 등과 함께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사건, 즉 오신죄안(五臣罪案)에 연좌되어 심양(瀋陽)에 잡혀가 심문을 받고 관직을 삭탈당한 뒤 이듬해 귀국하였다. 귀국 후 도승지가 되고, 호조·병조·예조의 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성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