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목은 ‘국긔복ᄉᆡᆨ소션’이다. 국기(國忌)란 나라의 기일(忌日)을 말하며 왕과 왕비·후궁의 제삿날을 말한다. 국기복식은 제삿날에 입는 제복(祭服)과는 구별되나 그 기록은 많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4년 7월 국기일 복색(服色)에 관한 논의에서 “조종조의 일기를 고찰해도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고 하였고,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기일 복색은 천담색(淺淡色)으로 한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도 “이틀 전부터 천담복(淺淡服)을 입는다.”는 것을 예로 든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국기일 복식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또한 국기복식에 대한 기록이 없다.
조선시대 헌종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기록인 『‘국긔복ᄉᆡᆨ소션’』에는 조선시대 역대 국기일과 비(妃)·빈(嬪)·나인[內人]의 국기복식 및 근신하는 몸가짐[素膳: 변변치 못한 음식]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경빈김씨의 『국긔복ᄉᆡᆨ』은 숙명여자대학교 소장본과 오륜대순교자박물관 소장의 두 가지 소장본이 전해져 오고 있다.
두 본 모두 그 당시 임금을 기준으로 한 사대봉사(四代奉祀)로서 숙명여자대학교 소장본은 헌종 때에 기록되어 정조·효의왕후(孝懿王后)·경우궁(景祐宮: 정조의 후궁)·순조·익종(翼宗)의 복식이 기록되어 있으며, 오륜대순교자박물관 소장본에는 순조·순원왕후(純元王后)·익종·신정왕후(神貞王后)·헌종·효헌왕후(孝憲王后)의 국기복식이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오륜대순교자박물관 소장본이 후대인 철종 때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소장본 『국긔복ᄉᆡᆨ소션』에 의하면 증조부[正祖]와 증조모[孝懿王后], 조부[純祖]·부[翼宗]의 국기일 근신으로 소선을 각각 하루, 이틀, 사흘씩 하였고 증조부는 기일 이틀 전, 조부와 부는 사흘 전부터 준비하였다. 이에 상세한 복식의 종류와 옷감 및 색, 노리개, 비녀, 가락지, 신발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살펴보면 국기복식은 기일 당일과 기일 며칠 전으로 구별된다. 기일 사흘 전에는 민족두리에 파란 죽잠 석웅황 매고, 초록 영초 단당저고리에 옥색 정주 저고리, 남색 정주 치마를 주로 입었고 4대에는 밀화 노리개와 지환을 할 수 있지만 그 외는 장신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3대부터 기일 당일에는 흑각잠(黑角簪)과 흑색 신발을 착용하였다. 오륜대순교자박물관 소장본 『국긔복ᄉᆡᆨ』은 4대[純祖], 3대[翼宗], 2대[憲宗] 국기 소선으로 각각 하루, 이틀, 하루를 하였다. 이는 숙명여자대학교 소장본과 다른 점으로 헌종의 소선은 하루로 기록되어 있다.
복식은 숙명여자대학교 소장본과 유사하여 민족두리에 파란 죽잠 석웅황 매고 초록 당고의, 남치마, 흑각잠, 흑웅리온혜의 기록이 있다. 또한 3대 익종의 기일 이틀 전에는 밀라 노리개와 금지환의 기록이 있는 점이 숙명여자대학교 소장본과 다르다.
이상을 정리하여 보면 국기일 복식으로는 초록 당의에 옥색 저고리, 남색 치마와 흑각잠과 흑색 신발을 신었다. 『ᄉᆞ졀복식ᄌᆞ장요람』의 사절복식과 비교해 보면 당의와 치마에는 대부분 초(綃: 생사로 짠 얇은 견의 총칭) 종류의 옷감을, 저고리는 화방주(花紡紬)나 생주(生紬)·토주(吐紬)와 같은 거친 주(紬)를 사용함으로써 근신하는 몸가짐을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