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절터에서 발견된 석조여래좌상.
개설
내용
불상은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머리와 손, 좌우대칭으로 표현된 법의 자락 등에서 초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가늘게 뜬 눈과 턱을 당겨 앞으로 약간 숙인 얼굴, 곧은 자세의 몸 등에서 선정(禪定)을 수행하는 붓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정면과 달리 밋밋하게 처리된 뒷면, 어느 곳인가에 고정하기 위하여 깎은 방형(方形) 대좌 밑 부분의 네모난 촉 등을 통하여 원래는 작은 목제 감실(龕室: 불상을 모시기 위한 집 형태의 공간) 속에 봉안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으나, 이 불상이 석가모니불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상이 취하고 있는 선정인이 석가모니 붓다의 참선(參禪) 수행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석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 불교 전래 초기에 가장 먼저 유행하던 불상 형식이다. 삼국시대 5세기에 조성된 뚝섬 출토 금동불좌상이나 부여 신리(新里)에서 출토된 금동불좌상,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고구려 장천(長川) 1호분 벽화의 예불도(禮佛圖)에서 같은 형식의 불상이 확인된다. 불상은 군수리의 백제 절터 목탑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백제 불상으로 추정되며, 조성 시기는 6세기 전반일 가능성이 높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최성은, 한길아트, 2003)
- 『한국 불교조각의 흐름』(강우방, 대원사, 1995)
- 『삼국시대 불교조각』(국립중앙박물관, 1990)
- 『국보』4 석불(황수영, 예경산업사, 1985)
- 『한국조각사』(문명대, 열화당, 1980)
- 『한국의 불상』(진홍섭, 일지사, 1976)
- 「백제 6세기 후반 납석제 불상 연구」(김춘실,『미술사학연구』250·251, 한국미술사학회, 2006)
- 「백제 초기 불상양식의 성립과 중국불상」(강우방·김리나,『백제연구총서』3,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3)
- Buddhist Sculpture of Korea(Kim Lena, Hollym International Corp.,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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