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승지,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지평을 역임하고, 경상도도사로 재직 중 병으로 아산에 은거하였다. 1641년 장령(掌令)이 되었으며, 헌납 · 집의를 거쳐 1651년(효종 2)에는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었고, 이듬해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3년 필선이 되고, 이어 승지가 되었다. 1660년 효종이 죽자 조대비(趙大妃)의 복제문제로 논쟁이 있을 때 3년설을 주장하는 윤선도(尹善道)를 지나치게 규탄하다가 파면되었다.
뒤에 복직하여 1661년(현종 2) 간성군수가 되었다. 이 때 혹심한 흉년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진곡(賑穀) 2,000섬을 별도로 마련하여 이들을 잘 구휼하였으므로 포상으로 가선대부에 승품되었다.
1663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시 다녀왔다. 그뒤 병조참의, 우승지 · 좌승지, 공조참판을 거쳐, 1668년 한성부우윤, 이어서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서파집(西坡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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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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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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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서장관으로 청나라행 : 『효종실록』 8권, 1652년(효종 3) 5월 29일. "이시백을 사은사로, 신계영을 부사로, 권령을 서장관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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