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강원도관찰사, 예조판서,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1687년에는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관내의 궁장에 민폐가 큼을 들어 이를 폐지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며, 1689년 승지로 재직중 기사환국을 맞아 삭직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관되어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다시 대사간이 되었고, 1696년에는 도승지가 된 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698년 한성부좌윤 ·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이어서 예조판서 · 한성부판윤을 거쳐, 1708년 판돈녕부사에 이르렀으며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일찍이 병자호란 때 아버지 권순장이 김익겸(金益謙) · 윤선거(尹宣擧)와 함께 죽기로 약속하였으나 윤선거는 이를 이행하지 않아 김익겸의 자손들은 윤선거의 아들인 윤증(尹拯)과 절교를 하였으나, 권시경은 오히려 윤증을 비호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호보(號譜)』
- 『송자대전(宋子大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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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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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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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근거 : 『영조실록』 109권, 1767년(영조 43) 11월 14일. "황경원·김응순·원인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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