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원주목사, 예문관제학, 세자빈객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0년(창왕 2) 액정알자감(掖庭謁者監)을 거쳐 예조좌랑이 되고, 이듬 해 이조좌랑을 거쳐 군자감승(軍資監丞)을 역임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도 계속 등용되어, 1394년(태조 3) 광주판관(廣州判官)에 임명되고, 이듬 해 중부유학교수관(中部幼學敎授官)이 되었다.
1400년(정종 2)에는 사헌부사헌에 오르고 성균직강(成均直講) · 예조정랑 · 사간원좌헌납(司諫院左獻納) · 집현전지제교(集賢殿知製敎) · 예문응교(藝文應敎) 등을 거쳐 사헌부장령에 올랐고, 그 뒤 성균사예(成均司藝) · 사헌부집의 · 사간원우사간 겸 춘추편수관(司諫院右司諫兼春秋編修官) 등을 거쳐 성균대사성에 올랐다.
1412년(태종 12) 예조우참의와 세자우보덕(世子右輔德)이 되었다가 곧 예조좌참의와 세자좌보덕이 되고, 형조참의를 거쳐 집현전직제학이 되었다. 1415년 원주목사를 거쳐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며, 1418년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빈객이 되었다. 관직에 재임하는 동안 두 번이나 시관(試官)이 되어 정인지(鄭麟趾) 등 명사 1백여 인을 선발하였다.
그는 글씨를 잘 썼으며 작품으로 그의 형 권근의 신도비(神道碑)가 남아 있다. 또한 시문에 능했으며 성리학과 『주역』에 밝았다. 당시 그의 학풍이 떨쳐져 정인지 · 안지(安止)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매헌집(梅軒集)』 6권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매헌집(梅軒集)』
- 『세종실록(世宗實錄)』
- 『소한당집(所閑堂集)』
- 『선광7년정사3월일문생진[사시방목](宣光七年丁巳三月日門生進[士試榜目])』(『고문서집성(古文書集成)』 23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 卷之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465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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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부친 :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 卷之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46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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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사 급제 : 『선광7년정사3월일문생진[사시방목](宣光七年丁巳三月日門生進[士試榜目])』(『고문서집성(古文書集成)』23책(거창 초계정씨篇), 韓國精神文化硏究院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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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 卷之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46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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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권우 저술 : 『매헌집(梅軒集)』 (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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