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규헌(葵軒). 본관은 안동(安東). 할아버지는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 아버지는 현복군(玄福君) 권렴(權廉), 어머니는 찬성사 조련(趙蓮)의 딸이며, 부인은 첨의평리(僉議評理) 정빈(鄭頻)의 딸이다.
성품이 바르고 성실하였으며 일찍이 등제하여 충주목사·황주목사를 역임하였는데, 백성들을 잘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이 남천할 때, 전법총랑(典法摠郎)으로서 왕을 호종한 공으로 1363년 신축호종이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에 서훈되었다.
1374년에는 홍륜(洪倫)·최만생(崔萬生)과 더불어 조카 권진(權瑨)이 공민왕을 살해하자 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1386년(우왕 12) 전공판서(典工判書)·전법총랑(典法摠郞) ·삼사우윤(三司右尹)으로 있을 때에 자신의 집을 수리하여 왕의 총비 숙녕옹주(肅寧翁主)의 궁으로 제공하여 시좌소(時座所: 일시적으로 왕이 거주하는 곳)로 삼으니 백관들의 정사가 이 곳에서 품계되었다.
1389년(창왕 1)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과거시험을 관장하였고 이어 밀직제학(密直提學)에 올랐다. 유필로는 여주 신륵사의 「신륵사대장각기(神勒寺大藏閣記)」,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의 「지공나옹사리석종비(指空懶翁舍利石鐘碑)」, 고양시 태고사(太古寺)의 「원증국사탑비(圓證國師塔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