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4책. 목판본. 경상북도 봉화의 충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근사록』은 원래 송나라 유학자인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 『정몽(正蒙)』 등에서 긴요한 장구만을 골라 편찬한 일종의 성리학 해설서로서, 송학(宋學)에 있어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 원나라의 성리학이 수입되자 『근사록』도 그때 함께 들어와 가장 먼저 간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글자체나 판식으로 보아 원판을 복각한 것으로 보인다. 1370년 이인민이 진주목사로 부임할 때 사예(司藝)였던 유학자 박상충(朴尙衷)이 송별의 뜻으로 『근사록』을 선사했는데, 그가 평소부터 구하고자한 책이라, 진주에 부임하자마자 바로 복간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책 끝에 ‘경술기축삭성산노숙근지(庚戌己丑朔星山魯叔謹識)’라 자서한 발문에서 알 수 있으며, 또한 제14권 15장 끝에 목기(木記)가 새겨져 있는데, 장방형 안에는 ‘성산이씨간우진양(星山李氏刊于晉陽)’이라 전서(篆書)되어 있다. 종형(鐘形) 안에 ‘홍무3년(洪武三年)’과 정형(鼎形) 안에 ‘이노숙(李魯叔)’이 각각 새겨져 간행 연대 · 간행자 · 간행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중종 때의 유학자인 권벌(權橃)의 수택본(手澤本)으로서 중종 때에는 경연에서 진강까지 했으며, 영조는 권벌의 후손인 권만(權萬)을 궁중에 불러 이 책을 손수 보고 늘 가까이 두었다. 1794년 정조는 「어제충정공권벌수진근사록서(御製忠定公權橃袖珍近思錄序)」를 지어 승정원좌부승지인 서영보(徐榮輔)에게 정서(淨書)하게 하여 책과 함께 후손에게 돌려보냈다.
근사록은 중국판의 번각(翻刻)이기는 하지만, 고려본의 유서(儒書)가 극히 희귀한 오늘날에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