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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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노숙 이인민이 원나라에서 들어온 『근사록』을 1370년에 4책으로 간행한 유교서.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순희 (문화재관리국, 역사학)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2일
경북 봉화 고서 근사록 표지 미디어 정보

경북 봉화 고서 근사록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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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노숙 이인민이 원나라에서 들어온 『근사록』을 1370년에 4책으로 간행한 유교서.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4책. 목판본. 경상북도 봉화의 충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근사록』은 원래 송나라 유학자인 주희(朱熹)와 여조겸(呂祖謙)이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 『정몽(正蒙)』 등에서 긴요한 장구만을 골라 편찬한 일종의 성리학 해설서로서, 송학(宋學)에 있어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 원나라의 성리학이 수입되자 『근사록』도 그때 함께 들어와 가장 먼저 간행된 것으로 여겨진다. 글자체나 판식으로 보아 원판을 복각한 것으로 보인다. 1370년 이인민이 진주목사로 부임할 때 사예(司藝)였던 유학자 박상충(朴尙衷)이 송별의 뜻으로 『근사록』을 선사했는데, 그가 평소부터 구하고자한 책이라, 진주에 부임하자마자 바로 복간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책 끝에 ‘경술기축삭성산노숙근지(庚戌己丑朔星山魯叔謹識)’라 자서한 발문에서 알 수 있으며, 또한 제14권 15장 끝에 목기(木記)가 새겨져 있는데, 장방형 안에는 ‘성산이씨간우진양(星山李氏刊于晉陽)’이라 전서(篆書)되어 있다. 종형(鐘形) 안에 ‘홍무3년(洪武三年)’과 정형(鼎形) 안에 ‘이노숙(李魯叔)’이 각각 새겨져 간행 연대 · 간행자 · 간행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중종 때의 유학자인 권벌(權橃)의 수택본(手澤本)으로서 중종 때에는 경연에서 진강까지 했으며, 영조는 권벌의 후손인 권만(權萬)을 궁중에 불러 이 책을 손수 보고 늘 가까이 두었다. 1794년 정조는 「어제충정공권벌수진근사록서(御製忠定公權橃袖珍近思錄序)」를 지어 승정원좌부승지인 서영보(徐榮輔)에게 정서(淨書)하게 하여 책과 함께 후손에게 돌려보냈다.

의의와 평가

근사록은 중국판의 번각(翻刻)이기는 하지만, 고려본의 유서(儒書)가 극히 희귀한 오늘날에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참고문헌

  • - 『국보』12 서예·전적(천혜봉, 예경산업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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