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8년(선조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충좌(朴忠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박눌(朴訥)과 박손경(朴孫慶)을 추가로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유림에 의해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8칸의 강당, 3칸의 동재(東齋)·서재(西齋), 2칸의 전사청(典祀廳), 장판각(藏板閣), 신문(神門), 외문(外門)과 6칸의 주소(廚所) 등이 있다. 사우에는 박충좌·박눌·박손경의 위패가 배향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들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동재·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장소이며,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하여두는 곳이고, 장판각은 문집의 판각을 보관하여두는 곳이며, 주소는 고자(庫子)들이 거주하고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몇 권의 문집이 있으며, 재산은 전답 8천평, 대지 1천2백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