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진사, 전적, 사예 등을 역임한 문신·서예가.
개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숙(文叔). 증조부는 글씨로 유명하여 이황(李滉)의 묘비를 쓴 금보(琴輔)이며, 아버지는 금시율(琴是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7년(숙종 3) 진사가 되었고, 다음해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 · 사예 등을 역임하였다.
벼슬에는 큰 뜻이 없어, 고향에 돌아와 증조부의 붓글씨에 매료되어 서예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금성규의 특출한 필법은 널리 알려져 글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막역하게 사귀던 당대의 이름난 사람으로는 이동표(李東標) · 권두인(權斗寅)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눌은집(訥隱集)』
- 『정사증광사마방목(丁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3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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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부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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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마시 급제 : 『정사증광사마방목(丁巳增廣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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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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