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현종 1) 거란침입 이후 백관에 지급할 녹봉이 부족하여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일직(日直) 황보 유의사(皇甫兪義司) 등은 왕에게 건의하여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빼앗아 백관의 녹봉에 충당케 하도록하였다.
문치를 숭상하고 무(武)를 경시하는 정책에 불만을 품어오던 무신들은, 이에 불만을 품은 상장군 김훈(金訓)·최질(崔質) 등이 1014년 11월 여러 위(衛)의 군사들과 더불어 난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고 장연우와 황보 유의를 귀양보내고 무관 상참(常叅) 이상은 모두 문관직을 겸하였다.
그리고 무신들은 왕에게 청하여 전대의 어사대(御史臺)를 혁파하고 금오대를 설치, 관원으로서 사(使)·부사(副使)·녹사(錄事)를 두었으나 모도 상임 인원은 없었다.
그러나 금오대는 그 이듬해 3월김훈 등 무신 19인이 처형되면서 혁파되고, 어사대는 사헌대(司憲臺)로 개칭되었고, 관원으로는 대부(大夫)·중승(中丞)·잡단(雜端)·시어사헌(侍御司憲)·전중시어사헌(殿中侍御司憲)·감찰사헌(監察司憲)을 두었다. 이와 같이 금오대는 현종 5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존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