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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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 · 군기를 맡아보던 중추원의 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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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 · 군기를 맡아보던 중추원의 후신.
내용

1095년(숙종 즉위년)에 중추원을 추밀원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송나라의 추밀원과 명칭이 동일한 것이다.

이후 원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다시 그 명칭과 직제가 변화를 보이게 된다. 1274년 충렬왕 즉위 초에 잠시 집주(執奏)의 관직을 두었다가 이어 그 관직을 폐지하고 다음해에 밀직사(密直司)로 개칭하였다. 그 뒤 1298년 5월에는 광정원(光政院)으로 개칭하였다가 8월에 다시 밀직사로 바꾸었다.

그 뒤 공민왕의 반원개혁정치에 따라 1356년(공민왕 5)에는 밀직사를 폐지하고 추밀원으로 바꾸고, 관원으로는 판원사(判院事)·원사(院使)·지원사(知院使)·동지원사(同知院使)·부사(副使)·첨서원사(簽書院事)·직학사(直學士)·지주사(知奏事)·좌우승선(左右承宣)·좌우부승선·당후관(堂後官)을 두어 문종 관제로 복구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高麗)의 중추원(中樞院)」(변태섭,『진단학보(震檀學報)』41, 1976)
「고려(高麗)의 중추원연구(中樞院硏究)」(박용운,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12,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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