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재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최병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1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최병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61년 최병심의 손자 최규만(崔圭萬)과 문인들이 편집 · 간행하였다. 서문과 발문은 없고, 간기(刊記)가 있다.

서지적 사항

전편 21권 9책, 후편 7권 3책, 목록 1책, 부록 1책, 합 30권 14책. 국립중앙도서관과 전북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전편의 권1에 시 280수, 권2∼13에 서(書) 823편, 권14에 잡저 36편, 권15에 서(序) 52편, 권16에 기(記) 65편, 제발(題跋) 11편, 명(銘) 6편, 잠(箴1편, 찬(贊) 4편, 자사(字辭) 2편, 혼서 2편, 상량문 5편, 고축(告祝) 7편, 제문 8편, 애사 1편, 권17∼19에 신도비명 2편, 비문(碑文) 20편, 묘갈명 136편, 권20에 묘지명 13편, 묘표 25편, 권21에 행장 21편, 행록 2편, 유사(遺事) 1편, 전(傳) 3편, 후편의 권1∼3에 시 18수, 서(書) 339편, 권4에 서(序) 41편, 기 46편, 제발 8편, 명 7편, 자사 1편, 상량문 4편, 고축 9편, 제문 3편, 권5·6에 신도비명 3편, 비문 22편, 묘갈명 91편, 권7에 묘지명 3편, 묘표 28편, 행장 12편, 행록 1편, 전 2편, 부록 1책에 제문 50편, 만사 160수, 한전사실추록(韓田事實追錄) · 제한전사실추록후(題韓田事實追錄後) · 행장 · 묘갈명 · 옥산연원록(玉山淵源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의 별지(別紙)에는 주로 경전(經傳) · 성리(性理) · 심기(心氣) · 의리(義理) · 예설(禮說) · 역리(易理) 등에 대한 논술이 많은데, 사문(師門)인 전우(田愚) · 이병우(李炳宇) · 송병선(宋秉璿)을 위시해 지구(知舊) · 동문인(同門人) · 문인 · 유림 등 당시의 석학 1천여 명과 주고받은 서한이 많다.

잡저 중에서 「화서답김감역서변(華西答金監役書辨)」은 이항로(李恒老)의 「심주리설(心主理說)」을 논변한 것이다. 태극과 성명(性命)은 천지와 인물의 자재(自在)하는 이치요, 음양과 오행의 몸과 마음은 천지와 인물의 동정(動靜)하는 기운이므로, 이(理)는 조짐이 없어도 기(氣)의 주재가 되고, 기는 작용을 해도 실상은 언제나 이를 싣고 있다. 그는 우주의 천태만상이 모두 태극의 원리라는 논리를 예로 들어 심(心)이 태극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성은 형이상(形而上)이요 심은 형이하로서 상하의 분별이 있고, 태극과 동정의 구분이 곧 성과 심의 구분이며, 도(道)와 기(器)도 구분이 뚜렷함을 밝히고 있다.

「성사심제변변(性師心弟辨辨)」은 조장섭(趙章燮)이 이기이물설(理氣二物說)과 심성일물설(心性一物說)을 제시해 성사심제설을 비판해오자, 이것을 조목별로 다시 반박한 것이다. 이기와 심성을 논할 때 종합적으로 논하면 하나요 분석적으로 논하면 둘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해, 무분별하게 이기는 두 가지요 심성은 한 가지라고 할 수 없음을 밝히고, 성을 이로 보고 심을 기로 규정한 입장에서 스승인 전우가 제시한 기본 명제인 성사심제, 곧 성존심비(性尊心卑)의 이론적 근거를 34조목에 걸쳐 거듭 밝히고 있다.

「고팔역사우(告八域士友)」는 1919년 고종이 죽었을 때, 멸망한 국가의 임금에게 복제가 있을 수 없다고 조긍섭(曺兢燮)이 주창하자, 변론문을 지어 전국 선비들에게 널리 알리면서 동요하지 말고 3년복을 입자는 내용이다. 「염수당강규(念修堂講規)」는 후진을 교육하는 강규 18조를 작성하고 학규(學規)를 도식으로 만들어 배우는 차례와 날로 몸과 마음을 살피는 절목을 알기 쉽게 열거하였다.

「경의문대(經義問對)」는 경학에 관해 문인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으로, 교육 자료로서의 진지성을 엿볼 수 있다. 「자민(自憫)」은 심(心)에 대한 원리를 문답식으로 피력한 논술이다. 「만록(漫錄)」에서는 경세지책(經世之策)과 처세지도(處世之道)를 역설해 자신의 이념을 천명하였다.

서(序) 가운데 「염재야록서(念齋野錄序)」는 한말 독립투사들의 비사(祕史)를 엮은 조희제(趙熙濟)의 『염재야록』에 서문을 쓴 것이다. 그는 목숨을 내걸고 의리를 앞세운 의사(義士)와 이익만을 도모한 매국노를 춘추대의적(春秋大義的)인 민족자존의 의지에서 단호히 의(義)와 이(利)로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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