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포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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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시성의 유고와 행장·묘갈명 등을 수록하여 1871년에 간행한 실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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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학자 김시성의 유고와 행장·묘갈명 등을 수록하여 1871년에 간행한 실기.

내용

2권 1책. 목활자본. 1871년(고종 8)에 8세손 진규(鎭奎)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돈우(李敦禹)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조성교(趙性敎)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 세계(世系)·연보·시 11수, 서(書) 3편, 부록으로 유사·행장 각 1편, 권2는 부록으로 명 3편, 문(文) 6편, 서(書) 1편, 명 1편, 기(記)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만시 1수를 빼고는 강정(江亭)의 10경을 읊은 것인데, 「학수신하(鶴峀晨霞)」·「용산모운(龍山暮雲)」·「전교목적(前郊牧篴)」·「후암소종(後庵疎鍾)」·「동만고탑(東巒古塔)」·「서안층암(西岸層巖)」·「징파약린(澄波躍鱗)」·「청사면구(晴沙眠鷗)」·「십리하화(十里荷花)」·「수촌상자(數村桑柘)」 등으로 시어가 아담하고 표현이 절묘하여 하나의 화폭을 보는 것 같다.

서(書) 중 아들 우진(宇振)에게 쓴 서찰은, 독자인 아들에게 학문에 힘써 과거에 급제하기 바란다는 것과 노복이나 전토를 물려줘 아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정이지만 백성의 것을 함부로 빼앗아 내 자손만을 배부르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전토를 그대로 두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부록의 문(文) 중 사제문(賜祭文)은 그가 죽은 다음해에 나라에서 예조좌랑 오도일(吳道一)을 보내 치제한 제문이며, 그밖에 하양(河陽)의 남호사(南湖祠)에 봉안할 때의 봉안문·축문·고유문 등이 있다. 또한, 부록의 「금포당기(錦浦堂記)」에는 그의 인품과 공적을 찬양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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