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4년(숙종 10)에 지방유림이 허조(許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하양읍 금락동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서사동으로 이건하고, 1790년(정조 14)에 ‘금호’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어 그곳에 유허비를 세우고 단향(壇享)으로 배향하여왔으며, 1923년 유림의 공의로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구인헌(求仁軒), 준도문(遵道門), 3칸의 고사(庫舍), 정침(正寢) · 하당(下堂) · 양몽재(養蒙齋)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허조의 위패가 봉안되었으며,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의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었다.
하당은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하여두는 곳이고, 준도문은 문루(門樓)로 사용하여 휴게소의 구실을 하였으며, 정침은 주로 유생들의 숙소로 이용되었다.
유물로는 『금호세고(琴湖世稿)』 목판본을 비롯하여 약간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다. 매년 2월 중정(中丁)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대지 500평, 전답 1,000평, 임야 5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