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허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9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경의는 사서 중에서 긍경(肯綮)의 요지를 문답식으로 제가의 말을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를 붙여 이기(理氣)의 분변과 진수(進修)의 요체를 밝힌 것이다. 이 가운데 「제가혹문」은 송나라 황간(黃幹)이 주희(朱熹)로부터 받은 서명(西銘)·동정설(動靜說)·한퇴지학(韓退之學) 등의 여러 제목을 혹문식(或問式)으로 하여 저자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원천지」는 천지의 운행 도수를 논하고, 태극과 음양을 이기에 결부시켜 논리적인 학설을 가한 것이다. 「묵경」에서는 사람은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성(誠)·도(道)·덕(德)·염(廉)·치(耻)·경(敬)·화(和)·민(敏)·검(儉) 등을 각 제목으로 하여 해설을 붙였다. 「음률문」에서는 음률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거문고의 제작 원리와 곡의 청탁을 말하고, 오음(五音)·십이율(十二律)에 대해 소상하게 해설하였다.
「논문무」에서는 문사(文事)가 있으면 반드시 무비(武備)가 있어야 나라의 대전(大典)이 된다고 말하고, 조선왕조가 안정된 날이 많아 무비를 모르기 때문에 유학도들이 문만 숭상한다고 지적, 신라시대 김암(金巖)이 백성에게 육진(六陣)의 병법을 가르친 일, 이태연(李泰淵)이 평안감사로 있을 때 정지화(鄭知和)와 더불어 대과(大科)를 베풀고 문신 4인과 무사 400인을 얻음으로 인하여 서토(西土)가 모두 충(忠)을 본받았다는 일, 이만(李㬅)·이명(李溟)·정벌(鄭撥)·조종도(趙宗道)·정시(鄭蓍) 등의 사실을 들어 무비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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