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정랑, 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관직은 정랑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정성껏 모셨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임해서는 의리로써 털끝만큼도 굽히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불우한 세상을 살다가 죽었다. 뒤에 집의가 추증되었고, 1643년(인조 21) 영천의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만취일고(晩翠逸稿)』가 있다.
참고문헌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력1년계유2월24일사마방목(萬曆元年癸酉二月二十四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한貴古朝26-29-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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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만력1년계유2월24일사마방목(萬曆元年癸酉二月二十四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한貴古朝2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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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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