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대 경문왕의 아버지이다. 희강왕(僖康王)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각간(角干) 충공(忠恭, 또는 忠孝) 갈문왕의 딸인 문목왕후(文穆王后)이다.
부인은 신무왕의 딸인 광화부인(光和夫人, 또는 光義夫人)이며, 아들 응렴(膺廉)은 경문왕이 되었다. 848년(문성왕 10) 파진찬(波珍飡)의 관등으로서 김양(金陽)의 뒤를 이어 집사성 시중(執事省侍中)이 되었다.
848년 이후 862년(경문왕 2) 1월 아찬(阿飡) 위진(魏珍)이 시중에 임명될 때까지 전혀 시중 임명기사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861년 그 아들인 경문왕이 즉위할 때까지 시중직에 있으면서 아들의 왕이 되는 것에 영향력을 행사한 듯 하다.
866년(경문왕 6) 1월에 의공대왕(懿恭大王)으로 추봉(追封)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아마 865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 하대의 왕위계승에서 김헌정계(金憲貞系)인 그가 김균정계(金均貞系)의 여자와 결혼을 함으로써 양계(兩系)의 타협·연합이 이루어져 경문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