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원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이문습독관을 역임하다가 안처겸의 옥사애 연루되어 유배된 학자.
이칭
  • 언명(彦明)
  • 월봉(月峰)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영광(靈光)
  • 사망 연도1550년(명종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문습독관
  • 출생 연도1478년(성종 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병수
  • 최종수정 2025년 1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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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이문습독관을 역임하다가 안처겸의 옥사애 연루되어 유배된 학자.

개설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언명(彦明), 호는 월봉(月峰). 평강현감 김경의(金敬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김필(金㻶)이고, 아버지는 헌납 김괴(金塊)이며, 어머니는 참의 우효신(禹孝新)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조광조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1519년(중종 14) 사마양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해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화를 당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인 장흥(長興)으로 돌아왔다. 그 뒤 1521년(중종 16)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으로 있으면서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당시 기묘사화로 조정은 사림들을 몰아내고 오로지 남곤(南袞) · 심정(沈貞) 등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안처겸은 시산부정(詩山副正) 정숙(正叔) · 권전(權磌) 등과 함께 간신들을 제거하여 국세를 바로잡아 볼 것을 논의하였다.

이때 송사련(宋祀連) 등이 이를 듣고 밀고하여 일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송사련의 밀고 문서에 습독관인 김광원도 들어 있었으나 당시 조광조를 구하려하였던 정광필(鄭光弼)의 두호로 해남(海南)에 유배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뒤 1533년 유배에서 풀려나 벼슬을 그만두고 장흥으로 돌아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사후 이조참의에 이어 이조참판에 각각 추증되었다. 장흥의 예양서원(汭陽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청선고(淸選考)』

  • - 『전고대방(典故大方)』

  • - 『월봉문집(月峰文集)』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가정[정덕]기묘식사마방목(嘉靖[正德]己卯式司馬榜目)』(전의이씨(全義李氏) 전산군파(全山君派) 이왕섭(李旺燮))

  • 주2

    : 안처겸 사건 연루 : 『중종실록』 43권, 1521년(중종 16) 10월 14일. "권전·안처겸을 형장 심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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