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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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산업은행총재, 우석대학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경제인. 실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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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한국산업은행총재, 우석대학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경제인. 실업가.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대구(大邱, 達城). 경상남도 창원(현재 창원시 마산회원구) 출생. 진사 서석련(徐錫蓮)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서상태(徐相台)이다.

1927년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9년에는 일본 남학생의 조선 여학생 추태행위가 직접 발단이 된 광주학생의거사건에 연루되어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을 다니던 중 중퇴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그 해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식산은행에서 입사하면서 사회의 첫출발을 하였다.

입사 후 빠른 승진으로 1950년까지 마산·포항·신마산·부산·대구 지점장을 차례로 역임한 뒤 조선저축은행(현 SC제일은행) 상무이사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1957년에는 한국흥업은행(전 한일은행) 전무이사에 취임하였다.

1960년에는 한국산업은행총재에 취임하였고, 총재로 있으면서 금융통화 위원 정위원 및 외자도입심사 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학교법인 우석대학 재단이사장을 겸하였으나, 이듬해 5·16군사정변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다시 1962년 한국나이론(현 코오롱)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여 1964년 취임 2년 만에 물러났다. 1965년 동양카프로락탐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여 2년 반 정도 활약한 뒤 1968년 1월에 물러났다. 1968년 5월에는 한국나이론주식회사 감사가 되었고, 1970년에는 10여 년 가까이 맡아 오던 학교법인 우석대학 재단이사장에서 물러났다.

40여 년의 일선 사장직과 금융전문인으로 활약한 경험을 살려 1970년 4월에는 서림흥업주식회사 및 서음전자주식회사를 창립함으로써 명실공히 오너로서 회장에 취임하였다. 1975년에는 몇 년 동안 맡아 오던 한국나이론주식회사 및 한국포리에스텔의 감사직을 그만두었다. 1976년 원진레이온 사장에 취임하였고, 2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다가 1978년에 퇴임하였다.

일제 치하에서 학생시절에는 의분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성장하여서는 금융인으로 활약하는 한편, 회사 경영을 일선에서 맡아 이끈 경영인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학교법인 우석대학 재단이사장으로 10여 년간 지내면서 교육 분야에도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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