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처음 충혜왕을 섬기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나주에 옮겨 살면서 전민(田民)을 탈취하여 부호가 되었다.
공민왕 때 나주에서 왜구를 격퇴하여 그 전공으로 복직되었으며, 권력자에게 재물을 주어 1359년(공민왕 8)에 전라도추포부사(全羅道追捕副使)가 되었다. 1361년 전라양광도방어사(全羅楊廣道防禦使)를 거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가 되고, 1362년에는 전라도연해순방 겸 조전사(全羅道沿海巡訪兼漕轉使)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좌상시로서 홍건적을 물리치고 경성(京城)을 수복한 공으로 경성수복1등공신에 봉해졌다. 1364년에는 외직으로 나가 전라도도순어사(全羅道都巡御史)가 되었으나, 백성을 침탈하고 조세를 갈취하여 사복을 채웠으며, 내포(內浦)에서 왜적을 만나 참패했으면서도 간신들에게 뇌물을 주어 도리어 임금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1371년 신돈의 일당으로서 유배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동지밀직(同知密直)이 되었고, 1373년에는 전라도순문사(全羅道巡問使)가 되었다.
그 뒤 행신(幸臣) 김흥경(金興慶)과 총신(寵宦) 김사행의 비위를 맞추어 1374년에는 경상도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로 옮겨 합포(合浦)를 지켰는데, 왜구 침입으로 5천인의 사상자를 낼 정도로 참패하여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