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어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부모 봉양을 위해 외직을 빌려 서천군수로 부임하였다. 이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 병조참의를 역임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의주목사로 갔다가 1518년(중종 13) 삼공(三公)에 문무 겸비의 인물로 천거되어 예조참판으로 전임되었다. 다시 경상우병사 ·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521년(중종 16) 공조참판으로 정조사(正朝使)에 임명되어 북경을 다녀왔다.
대사헌을 거쳐 1523년 예조판서 · 우참찬 · 이조판서를 지내다가 잠시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다시 찬성 · 병조판서 겸 지경연 세자이사로 있다가,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그 일파의 모함으로 1531년(중종 26)정광필(鄭光弼)과 함께 흥덕(興德)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김안로가 죽자 귀양에서 풀려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비교적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자세했으며, 세 번이나 예조판서를 지낼 만큼 문학에 뛰어났고 간결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사림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였다. 저서로 『우정집(憂亭集)』이 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월사집(月沙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우정집(憂亭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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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홍치9년병진윤3월초3일생원진사방(弘治九年丙辰閏三月初三日生員進士榜)』(『충재선조부군진사방목(冲齋先祖府君進士榜目)』, 권벌 종가 전적(權橃宗家典籍)[보물 제89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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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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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공신 녹훈 : 『중종실록』 1권, 1506년(중종 1) 9월 8일. "공신을 책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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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정조사로 북경행 : 『중종실록』 43권, 1521년(중종 16) 10월 13일. "김극성이 북경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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