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상의원별제, 홍산현감, 괴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백(重伯)
지남(砥南)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5년(인조 13)
사망 연도
1696년(숙종 22)
본관
예안(禮安: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상의원별제|홍산현감|괴산군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상의원별제, 홍산현감, 괴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중백(重伯), 호는 지남(砥南), 아버지는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된 김단(金鍴)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극해(權克諧)의 딸이다. 외조인 권사고(權槎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7년(숙종 3) 향천(鄕薦)으로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후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사포서별검(司圃署別檢) 등을 거쳤으며 1691년 수상(首相) 권대운(權大運)과 이조판서(吏判) 유명현(柳命賢)의 추천으로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에 임명된 후 홍산현감(鴻山縣監), 괴산군수(槐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홍산현감으로 있을 때 흉년을 만나자 자기의 봉급을 털어 6백여 석의 곡물(穀物)로 굶주린 사람들을 구했으며, 많은 토지를 농경정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자 도신(道臣: 관찰사)이 그의 공로를 칭친하였다.

괴산군수로 있을 때에도 오로지 군민(郡民)만을 위한 정책을 펴자 고을 사람들이 그를 존모(尊慕)하여 송덕비(頌德碑)를 세웠으나 곧 묻도록 명하였다. 그가 괴산 군제(郡齋)에서 세상을 마치니 그의 청백(淸白)한 마음을 아는 친구들이 옷 한 벌씩을 보내 장사 지내도록 하였다. 저서로는 『지남일고(砥南逸稿)』가 있다.

참고문헌

『지남일고(砥南逸稿)』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