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북청판관, 충청도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익(景益)
  • 청륙(靑陸)
인물/전통 인물
  • 본관상주(尙州)
  • 사망 연도1633년(인조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동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552년(명종 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수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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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북청판관, 충청도사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익(景益), 호는 청륙(靑陸). 김형(金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장수(金長琇)이며, 아버지는 김홍(金洪)이다. 아우가 대사헌 김덕함(金德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에 생원 · 진사에 합격하고, 1583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94년 형조좌랑이 되고 1597년에 문과 중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같은 해 공조정랑이 되었으나 적당한 인물이 아니라는 정언 조즙(趙濈)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1598년에 북청판관, 1605년에 충청도사 등 외직을 역임하였다. 1612년(광해군 4) 광해군을 비방하는 익명의 언서(諺書)가 집에 투하되어 추국을 당하였다. 뒤에 노인직으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르고 집에서 은거하였다. 아우와 함께 행실과 글재주로 명성이 높았으며 저서로는 『청륙집(靑陸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 주1

    : 사마 급제 : 『만력7년기묘4월초2일사마방목(萬曆七年己卯四月初二日司馬榜目)』(규장각한국학연구원[古4650-108])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조즙의 탄핵 상소 : 『선조실록』 89권, 1597년(선조 30) 6월 8일. "선공감 제조 박충간과 정 박정립, 공조 정랑 김덕겸을 체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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