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에 출품하여 4차례 계속 특선을 수상했는데, 그중 1968년 제17회 국전 때 이은상(李殷相)의 시를 쓴 한글작품 「애국시(愛國詩)」를 출품하여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는 국전사상 서예 부문에서 최초 대상을 수상한 것인데, 당시 그의 출품작이 스승의 국문전서와 유사하다는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 뒤 한글 판본체를 바탕으로 예스러운 풍격을 바탕으로 독특한 감필법(減筆法)으로 질박하면서도 굳센 필치를 이루었고, 또 흘림을 가미한 필사체에서는 더욱 고졸한 서풍을 이루는 등 한글 서예의 미학적 영역을 새롭게 넓혀갔다. 전각(篆刻)도 잘했는데 한글 글씨와 잘 어울리는 특유의 각풍(刻風)이 돋보인다.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에서 교편을 잡았고 대학미전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국전 초대작가 ·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및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전라남도 문화상을 수상했다.
필적으로 「 국민교육헌장」(1968년) · 「행주산성 전첩비문」(1970년) · 「 칠백의총 비문」(1971년) · 대전의 「윤봉길 의사 동상문」 · 익산과 횡성의 「三 · 一운동 기념비문」 · 구미의 「구미공업단지 준공비문」 · 서울의 「백제토성 사적비문」 · 경주의 「석가탑 다보탑 신건기 비문」 등과 곳곳에 많은 편액 글씨를 남겼다. 대작으로 1974년 『화엄경』 10,915자를 쓴 「화엄경 10곡병풍」, 성경의 시편과 요한복음, 그리고 찬송가를 쓴 「성경 12곡병풍」, 예술의전당에 소장된 「 용비어천가」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