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교육헌장 ()

국민교육헌장 선포식
국민교육헌장 선포식
문헌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된 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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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된 헌장이다. 민족적 정체성과 근대화에 부합하는 윤리와 가치관의 형성을 기본 원리로 삼아 구성되어 있다. 학교 교육 및 사회교육의 목적과 내용, 방법을 민족주의와 근대화 전략에 따라 재편성하는데 큰 영향을 발휘했으나 전문 암송 및 의식에서의 낭독 의무화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유신체제의 정당화에 활용되는 등 정치적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1980년대 이후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1994년 문민정부 하에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정의
1968년 12월 5일,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아 대통령령에 의해 반포된 헌장.
제작 및 발급 경위

박정희 정부는 제2차 5개년계획[1967~1971] 시행과 병행하여 교육헌장의 제정에 착수하였다. 1968년 1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국민교육의 장기적이고 건전한 방향을 정립할 시민생활의 건전한 생활윤리 ·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의 근대화와 민족 만년의 대계를 위해서 극히 중요한 일임을 강조’하며 ‘우리 민족의 주체성 확립에 기초를 둔 헌장’의 제정을 당시의 권오병 문교부장관에게 지시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1월 25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면이라든지, 또 우리의 마음가짐 등 우리 국민이 근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의 철학적인 바탕 또는 기조’ 등을 ‘제2경제’라 명명하며 통념상의 경제, 즉 ‘제1경제’의 발전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배경으로 1968년 6월 각 학계의 중진들로 준비회를 구성하였다. 국사, 정치, 사회, 경제, 법률, 교육, 철학 등 7개 전문 분야의 전문위원 7명이 분야별 제정 요강에 따른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그들을 수합하여 초안이 작성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주재로 6차례에 걸쳐 초안을 심의하여 10월 하순 국민교육헌장 최종안을 작성하였다. 1968년 10월 22일 제89차 국무회의에서의 심의, 11월 13일 국회 제67회 문교공보위원회에서의 심의를 거친 후, 11월 26일 국회 제24차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헌장동의안이 가결되었으며 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이 발포되었다.

시행

정부는 국민교육헌장을 학교 교육에 적용하기 위하여 각 학교에 대해 ① 국민교육헌장독본 지도를 철저히 할 것, ②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교장실, 교무실, 교실 등에 게시하고 모든 의식에서 낭독할 것, ③ 교직원과 전학생[국민학교는 4학년 이상]이 암송할 것 및 지역사회 및 학부모에게 계몽할 것 등을 하달했다. 나아가 국민교육헌장의 취지를 교육내용에 반영하기 위해 교육과정 개편에 착수했다. ‘반공도덕’을 국민학교와 중학교에서 1시간씩 늘리고 인문계고등학교의 ‘국민윤리’를 ‘반공 및 국민윤리’로 바꾸어 1시간 늘렸으며, 중학교 2학년 사회의 국사 부분을 세계사와 분리하였다.

또한 1971년에 국민학교 저학년, 1972년에 국민학교 고학년 및 중학교, 실업계고등학교, 1973년에 고등학교 교과서를 개정하였다. 이후 1973년부터 제3차 교육과정 개정을 단행하여 중학교 및 고등학교의 여러 교과를 각기 ‘도덕’과 ‘국민윤리’로 통합하여 국정교과서로 발행하였다. 한편 국민교육헌장 선포 이후 초 · 중 · 고등학교에서는 애국조회, ‘국기에 대한 맹세’ 복창, 국기하강식, 군사훈련, 반공교육 관련 행사 등 민족주의적 · 전체주의적인 학교 규율이 대폭 강화되었다.

의의 및 평가

국민교육헌장은 경제개발계획 시행 등 박정희 정부의 근대화 정책에 부응하여 학교 교육 및 사회교육을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중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0년대 초에 들어선 전두환 정부 하에서도 국민교육헌장은 형식적으로 유지되었으나 공식 행사에서의 헌장 낭독은 사라졌고 학교 교실에 게시된 헌장 액자도 철거되었다. ‘국민교육헌장’을 대신하여 ‘국민정신교육’이라는 용어가 주도적으로 표방되었다. 연례행사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던 국민교육헌장 선포기념식도 1988년 이후에는 크게 축소되었다.

국민교육헌장 선포 당시에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는 등 이렇다 할 반대의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국민교육헌장이 유신체제 유지와 정당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자 그에 대한 비판의 움직임도 없지 않았다. 1978년 6월 전남대학교 교수들이 발표한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이 그 예이다.

1980년대에 접어든 후에도 국회에서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비판적 문제 제기가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1993년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등장한 김영삼 정부 하에서 국민교육헌장의 폐지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민교육헌장 폐지 요구가 제기되자, 교육부는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에 국민교육헌장 존폐 여부에 관한 연구를 의뢰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김영삼 정부는 공식적인 폐기나 헌장 내용의 개정 혹은 새로운 헌장 제정 등의 본격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으나 1993년 12월 제25주년 기념식을 끝으로 헌장선포기념식을 중지했으며, 1994년 11월부터는 각급학교 교과서에 게재되어 있던 국민교육헌장을 삭제했다. 이후 국민교육헌장은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돈희 외, 『국민교육헌장에 관한 종합 연구』(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교육연구소, 1994)
『국민교육헌장자료총람』(한국경영개발협회출판부, 1972)
박성탁, 『국민교육헌장의 이론적 배경과 그 실천 (상권)』(교육출판사, 1971)
『국민교육헌장독본』(문교부, 동아출판사, 1968)

논문

김한종, 「학교교육을 통한 국민교육헌장 이념의 보급」(『역사문제연구』 15, 역사문제연구소, 2005)
신주백, 「국민교육헌장의 역사(1968-1994)」(『한국민족운동사연구』 4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5)
김진균, 「현행 ‘국민교육헌장’의 정치적·교육적 문제」(『경제와 사회』 24, 비판사회학회, 1994)

기타 자료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3: 제6대편』(대한공론사, 1973)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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