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삼 ()

유교
인물
조선전기 병조좌랑, 옥당, 삼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사로(士魯)
칠봉(七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07년(중종 2)
사망 연도
1560년(명종 15)
본관
의성(義城)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병조좌랑|옥당|삼척부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병조좌랑, 옥당, 삼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로(師魯). 호는 칠봉(七峰).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된 김치정(金致精)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훈련원참군(訓練院參軍) 이계공(李季恭)의 딸이다. 김취성(金就成)·이광(李光)·송희규(宋希奎)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한 때 정언(正言)으로 간신(奸臣) 진복창(陳復昌)의 비위를 거슬렸다가 외직으로 쫓겨났다. 이어 간원(諫院), 헌부(憲府), 이조(吏曹)·병조좌랑(兵曹佐郞), 옥당(玉堂) 등을 역임했다.

또, 사옹원정(司甕院正)에서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어 여러 상서가 있었다. 어사(御使)의 상신으로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淳厚)하고 몸가짐을 삼갔으며 경(敬) 공부를 독실히 했다. 그는 항상 밤중에 일어나서 성현의 훈사(訓辭)를 외웠는데 늙도록 그 일을 중지하지 않았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아버지 김치정과 그의 아들 김우홍(金宇弘)·김우굉(金宇宏)·김우용(金宇容)·김우옹(金宇顒) 4형제가 효우(孝友)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천곡(川谷)의 향현사(鄕賢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칠봉일집(七峰逸集)』 1권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명종실록(明宗實錄)』
『문소세고(聞韶世稿)』
『칠봉일집(七峰逸集)』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