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의리적 구투」, 「시우정」, 「형사고심」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연극인.
내용
그러나 신극좌의 단원들 중 이름을 떨치던 배우들이 다시 이기세(李基世)의 문예단(文藝團)으로 돌아가 버리고 대부분 신인들만 남게 되어 운영이 부진하게 되자, 당시 단성사의 주인이던 박승필(朴承弼)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우리나라 활동사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투(義理的仇鬪)」를 만들어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였다.
이 연쇄극은 1918년 황금좌(黃金座)의 창립2주년 기념공연을 위하여 일본에서 초청되어온 세토나이카이극단(瀨戶內海劇團)의 「선장의 처」를 보고 시도한 것이다. 김도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으며, 그는 이후에도 몇 편의 연쇄극과 기록영화를 만든 뒤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1922년 초겨울 「국경」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다가 자동차사고로 부상을 입고 투병 중에 사망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작품으로는 1919년「의리적 구투」·「시우정(是友情)」·「형사고심(刑事苦心)」·「경성전시(京城全市)의 경(景)」·「경성교외전경(京城郊外全景)」, 1920년「의적(義賊)」 등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영화전사』(이영일, 삼애사(三愛社), 1969)
- 『한국영화측면비사』(안종화, 춘추각,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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