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청람(靑嵐). 서울 출생. 김성제(金性濟)의 셋째 아들이다. 1917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옥고까지 치렀으나 나중에 복학이 되어 1924년에야 의사가 되었다.
졸업 후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 내과의 조수로 있으면서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약 10년간 내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다가 광복이 되자 곧바로 모교 내과학교수로 임명되었다.
학교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바뀌면서 그 뒤는 줄곧 대학에서 내과학 중에서도 소화기질병의 권위자로서 후학을 키우는데 전념하였다.
6·25 당시에는 의과대학 임시관리책임자와 육군병원장으로 있으면서 국방부장관 및 UN군과 협의하여 대학의 의료기자재와 함께 국보급의 조선왕조실록을 의서(醫書)로 꾸며 남쪽으로 수송함으로써 전화에서 건졌다.
그 뒤 대학으로 돌아와 교수와 병원장으로 계속 봉직하다가 1962년 정년퇴임과 함께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1968년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는 사학(私學)을 발전시키는 일에 주력하였으며, 그 공으로 1971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내과학을 공부하는 후학에 대한 사랑은 1980년 그의 호를 딴 청람장학회를 만드는 것으로 결실시켜, 해마다 전국의 내과학 교수 중에서 우수한 논문을 낸 사람을 1명씩 골라 장학금을 주고 있다. 저서로는 『김동익박사문집』과 『함춘원시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