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추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용양위부사직,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이칭
운서(雲西)
구재(懼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2년(명종 17)
사망 연도
1660년(현종 즉위년)
본관
의성(義城)
출생지
경주(慶州)
주요 관직
용양위부사직
정의
조선 후기에, 용양위부사직,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운서(雲西), 호는 구재(懼齋). 경주 출신.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김건(金健)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로 김수문(金守文)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영양(永陽)·창암(倉巖)·노항(魯巷) 등지에서 적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이때의 공으로 훈련주부(訓鍊主簿)에 임명되었다. 1593년 무과 초시에 합격하여 1595년 훈련판관에 제수되고, 원종이등공신(原從二等功臣)에 기록되었다. 1599년 무과에 급제, 1650년(효종 1) 용양위부사직(龍驤衛副司直)에 오르고, 이듬해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저서로는 『구재실기(懼齋實記)』1책이 있다.

참고문헌

『구재실기(懼齋實記)』
집필자
권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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