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문정공(文正公) 김태현(金台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참판 김거안(金巨安)이다. 아들로 김승평(金昇平)이 있다.
고려 말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 출신으로서 1386년(우왕 12) 전라도원수를 따라 남원 · 보성 등지에서 왜구를 격퇴한 공으로 돌산만호(突山萬戶)가 되었다.
조선 초기 1394년(태조 3)에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김빈길(金賓吉), 만호 김윤검(金允劒) 등과 함께 왜적선 세척을 포획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활 · 화살 · 은기(銀器) 등을 하사받았다. 1406년(태종 6) 전라도수군단무사(全羅道水軍團撫使)로서 왜적선 한 척을 포획하였다.
1407년(태종 7)에 상호군(上護軍)이 되어 이추(李推), 대호군(大護軍) 강원길(姜元吉)과 함께 요동의 피망민을 압송하여 돌려보내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경기수군도절제사로서 충청 · 전라도수군도체찰추포사(忠淸全羅道水軍都體察追捕使)를 겸직하고, 1411년(태종 11) 충청도수군절제사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인하여 벼슬을 사양하였다.
이듬해 전라도수군절제사가 되었으며, 1418년(태종 18) 황해도도관찰사에 제수되어 부임하였으나 곧 병으로 사직하였다. 사람됨이 매우 공손하고 겸손하였으며, 특히 왜구토벌에 공이 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