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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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귀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김헌창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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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귀족.
개설

진골에서 6두품으로 강등되었다. 태종무열왕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주천(周川)이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까지는 장군과 재상을 배출한 장상호(將相戶)로 알려졌으나, 아버지 주천 때에 와서는 진골 관등으로서는 최하위인 한찬(韓粲 : 大阿飡)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의 대에 이르러서 족(族)을 강등당하여 6두품으로 떨어졌다.

그의 족강(族降)은 왕위쟁탈전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즉 무열왕계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혜공왕이 내물왕계인 선덕왕에게 시해되자, 무열왕의 직계손인 김헌창(金憲昌)이 이에 반발하여 난을 일으켰는데, 범청이 그 난에 동조했기 때문에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聖住寺郎慧和尙白月葆光塔碑)에 실려 있는 범청과 관련된 득난(得難) 등의 기록은 신라사회에 있어서 족강에 관한 최초의 기사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조선총독부 편, 아세아문화사, 1976) 상·하(조선총독부 편, 아세아문화사, 1976)
『최문창후전집』(최치원, 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72)
『한국고대사회연구』(김철준, 지식산업사, 1975)
「신라하대선종구산파의 성립-최치원의 사산비명을 중심으로-」(최병헌, 『한국사연구』 7,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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