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伊飡)으로 696년(효소왕 5) 1월 중시에 임명되어 698년 2월까지 2년1개월간 중시로서 재임하였다.
그의 취임 무렵 신라는 서시(西市)와 남시(南市)가 설치되어 이미 설치된 동시(東市)와 함께 신라 수도의 3대시를 이루었는데, 신라 중대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재임기간중 상서로운 곡물인 가화(嘉禾)가 진상되는 등 대체로 평안을 유지하였으나, 698년 2월 수도인 경주에 지진이 일어나고 대풍(大風)으로 나무가 꺾이는 변고가 일어나자 늙음을 이유로 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