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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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통리기무아문의 통상당상,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이칭
  • 공필(公弼)
  • 난재(蘭齋)
  • 시호문충(文忠)
인물/근현대 인물
  • 관련 사건임오군란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882년(고종 19)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26년(순조 2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홍규 (전 수원대학교, 한국학)
  • 최종수정 2025년 12월 2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개항기 통리기무아문의 통상당상,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관료.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필(公弼), 호는 난재(蘭齋). 호조참판 김재성(金在成)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8년(헌종 14) 증광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교(待敎)가 되었다. 1859년(철종 10) 이조참의 · 부제학을 거쳐 그 이듬해 규장각직제학이 되었다. 곧 이어 예방승지(禮房承旨) · 개성부유수 등을 지냈으나,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에 의해 관직에서 축출되었다.

그러나 다시 척족 민씨의 일파가 되어 형조판서 · 이조판서 · 선혜청당상을 지냈다. 선혜청당상 재임 중에는 모리행위가 심하여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1881년 통리기무아문의 통상당상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체결된 관세율을 일본에도 적용시키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전권대관(全權大官)에 임명되어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와 협상하게 되었다.

또한, 임오군란 직전 군영의 군인들에게 녹봉미(祿俸米)가 지급되지 못하자, 군인들은 선혜청당상이던 민겸호(閔謙鎬)와 당시 경기도관찰사이던 김보현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임오군란이 일어난 뒤 대궐 안에 난입한 난군들에 의하여 민겸호와 함께 중희당(重熙堂)에서 피살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참고문헌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기년변고(紀年便攷)』

  • - 『매천야록(梅泉野錄)』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일본과 협상 : 『고종실록』 19권, 1882년(고종 19) 4월 19일. "일본인의 통상세를 김보연과 김홍집으로 하여금 약정하게 하다"

  • 주3

    : 시호 추증 : 『고종실록』 29권, 1892년(고종 29) 8월 4일. "김병덕 등 11명에게 시호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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