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

근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마전군수, 강릉부사, 가평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성오(成吾)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4년(순조 14)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안동(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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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마전군수, 강릉부사, 가평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목사 김교근(金喬根)의 아들이며, 대사헌 김병규(金炳奎)의 동생으로, 갑신정변의 주모자인 김옥균(金玉均)의 양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46년 소과(小科)에 합격하였으나 문과급제를 못하고 음직으로 1852년(철종 3) 광릉참봉을 지냈다.

1856년 옥과현감을 시작으로 1859년 금성현령, 1865년(고종 2) 옥천군수를 거쳐 1868년 양양부사, 1877년 마전군수, 1880년 강릉부사를 역임하고 1884년 6월까지 가평현감을 지내는 등 주로 외직을 담당하였다.

옥천군수 재직 때에는 제주도에서 보낸 공마(貢馬)의 분실이 많았다는 이유로 제주목사와 공마수송시 연변의 여러 읍 수령과 함께 문책을 받았다.

1883년 통정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에는 부호군(副護軍)이었으나 정변의 실패 후 김옥균의 양부라는 죄명으로 삭탈관직되었다. 1886년 허직(許稷) 등 대각(臺閣)에서 상소를 올려 사면을 요청하였지만 거부되었다.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청선고(淸選考)』
『Korea’s 1884 Incident』(Cook, H. F., 대원출판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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