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마전군수, 강릉부사, 가평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56년 옥과현감을 시작으로 1859년 금성현령, 1865년(고종 2) 옥천군수를 거쳐 1868년 양양부사, 1877년 마전군수, 1880년 강릉부사를 역임하고 1884년 6월까지 가평현감을 지내는 등 주로 외직을 담당하였다.
옥천군수 재직 때에는 제주도에서 보낸 공마(貢馬)의 분실이 많았다는 이유로 제주목사와 공마수송시 연변의 여러 읍 수령과 함께 문책을 받았다.
1883년 통정대부에 가자(加資)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때에는 부호군(副護軍)이었으나 정변의 실패 후 김옥균의 양부라는 죄명으로 삭탈관직되었다. 1886년 허직(許稷) 등 대각(臺閣)에서 상소를 올려 사면을 요청하였지만 거부되었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Korea’s 1884 Incident』(Cook, H. F., 대원출판사, 197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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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숭정기원후4병오식사마방목(崇禎紀元後四丙午式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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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책 내용 : 『고종실록』 4권, 1867년(고종 4) 8월 24일. "사복시에서 제주에서 공마를 고실한 것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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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갑신정변 연루 : 『고종실록』 21권, 1884년(고종 21) 11월 1일. "역적들의 연좌되어야 할 친족 중에서 김옥균 등의 가족들을 삭탈관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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