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서북면순문사, 동지밀직사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63년 흥왕사(興王寺)의 변을 평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올라 전(田) 200결과 노비 10구(口)를 하사받았으며, 6월에는 판도판서(版圖判書)로 개성윤(開城尹) 양백안(楊伯顔)과 함께 극성방어사(棘城防禦使: 극성은 지금의 황해도 황주)가 되었다.
다음 해 8월에는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임명되었다. 1372년 7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서 진헌사(進獻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방물을 바치고 다음 해 2월에 중서성의 자문(咨文)을 받아왔다.
1374년(우왕 즉위년) 공민왕이 살해되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북원(北元)에 가서 국상을 알렸다. 이때 북원에서는 공민왕의 후사로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손자인 탈탈불화(脫脫不花)를 고려왕으로 삼아 들여보내자 그들을 따라 신주(信州)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고려의 중 소영(小英)이 탈탈불화와 비밀리에 통하는 사실을 탐지하고 탈출해 돌아와 이를 조정에 보고했다. 그 결과 그들의 계략은 실패하고 소영은 죽임을 당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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