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견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화평부원군 등을 역임한 관리 · 공신.
이칭
이칭
김승석(金承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46년(충목왕 2)
본관
광산(光山)
주요 관직
밀직부사
관련 사건
조적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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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화평부원군 등을 역임한 관리 · 공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초명은 김승석(金承石). 할아버지는 지도첨의사(知都僉議事) 김주정(金周鼎), 아버지는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 화평부원군(化平府院君) 김심(金深)으로 그의 서자이며, 이복 형제로 김승사(金承嗣)・김승한(金承漢)・김승진(金承晋)・김승로(金承魯)가 있다. 부인은 사재령(司宰令) 최신창(崔信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충숙왕 때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고, 충혜왕 때에 화평부원군에 봉해졌다. 1332년(충혜왕 2) 적신(賊臣) 조적(曹頔) 등이 왕궁을 습격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충혜왕을 시종하여 보필한 공으로 1342년(충혜왕 복위 3) 일등공신에 녹훈되었다.

1343년 충혜왕이 민환(閔渙)의 말을 듣고 모든 부호들에게서 자색이 있는 노비를 취하려 할 때, 주리(主吏)가 가비(家婢)를 찾으러 오자 때려서 쫓아내었다.

그리고, 왕을 알현하여 서자 완자첩목아(完者帖木兒)가 원나라에서 벼슬하여 왕의 총애를 받고 있음을 은근히 과시하니, 이에 놀란 왕이 말을 하사하고 노비 요구를 철회하였다. 아들은 김수(金粹)와 서자인 완자첩목아가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광산김씨보(光山金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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