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것은 1524년 남곤(南袞) · 심정(沈貞) 등의 탄핵으로 풍덕에 유배되었던 김안로가 1531년 다시 예조판서로 등용되자 정세가 바뀌게 되었는데, 의정부 · 육조 · 홍문관에서 1524년에 탄핵하고 나섰을 때 홍문관직제학이던 김섬도 이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1537년 김안로가 실각되어 사사(賜死)되자 귀양에서 풀려나 함경도관찰사 · 호조참판 ·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 중종이 병중인데도 자녀들 혼인을 예도 갖추지 않고 치렀다 하여 양사(兩司: 사간원 ·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그 뒤 1546년(명종 1)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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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 급제 : 『정덕2년정묘춘증광사마방목(正德二年丁卯春增廣司馬榜目)』(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고)349.16 사마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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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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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풍덕 유배 : 『중종실록』 71권, 1531년(중종 26) 10월 28일. "홍문관 직제학 김섬을 풍덕에 도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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