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섬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진(子晉)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언양(彦陽)
주요 관직
첨지중추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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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함경도관찰사, 호조참판,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자진(子晉). 김자(金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경장(金慶長)이고, 아버지는 김계조(金繼祖)이며, 어머니는 정소남(鄭召南)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7년(중종 2)에 생원시에 주1 후, 1513년(중종 8) 식년 문과에 병과로 주2. 이후 지평(持平)을 거쳐, 수찬(修撰) · 부응교(副應敎) · 집의(執義) · 사간 · 직제학(直提學) 등을 지냈다. 1531년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하다가 도리어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풍덕(豊德)으로 주3

그것은 1524년 남곤(南袞) · 심정(沈貞) 등의 탄핵으로 풍덕에 유배되었던 김안로가 1531년 다시 예조판서로 등용되자 정세가 바뀌게 되었는데, 의정부 · 육조 · 홍문관에서 1524년에 탄핵하고 나섰을 때 홍문관직제학이던 김섬도 이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1537년 김안로가 실각되어 사사(賜死)되자 귀양에서 풀려나 함경도관찰사 · 호조참판 ·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 중종이 병중인데도 자녀들 혼인을 예도 갖추지 않고 치렀다 하여 양사(兩司: 사간원 ·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그 뒤 1546년(명종 1)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주석
주1

생원 급제 : 『정덕2년정묘춘증광사마방목(正德二年丁卯春增廣司馬榜目)』(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고)349.16 사마정덕])

주2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주3

풍덕 유배 : 『중종실록』 71권, 1531년(중종 26) 10월 28일. "홍문관 직제학 김섬을 풍덕에 도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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