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판의금부사, 병조판서, 훈련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군서(君瑞)
  • 시호효정(孝靖)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764년(영조 4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판서
  • 출생 연도1699년(숙종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갑균 (청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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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판의금부사, 병조판서, 훈련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군서(君瑞). 증조부는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도영(金道泳)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어영대장 장붕익(張鵬翼)의 천거로 사복시내승(司僕寺內乘)으로 기용, 선전관 등을 거쳐 고부군수를 역임하였다.

1733년 도총부도사에서 별군직(別軍職)으로 전임되었으며, 내시사(內試射)에서 직부전시(直赴殿試)의 자격을 얻어 권무과(勸武科)에 급제, 이듬해 훈련원정 · 정주목사 · 경상우병사 · 동부승지 · 황해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735년 평안도병마절도사 · 총융사 · 어영대장, 이듬해 훈련대장, 1737년 우윤 · 병조판서 · 형조판서, 이듬해 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740년 다시 병조판서가 된 뒤 1743년 판윤, 1748년 좌포도대장, 1754년 판의금부사를 지냈으며, 20여 년간 병조판서와 훈련대장을 번갈아가며 역임, 군사책임자로서 군정(軍政)을 일신하고 성지를 수축하는 등 국방강화에 노력하였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미호집(渼湖集)』

주석

  • 주1

    : 직부전시로 급제 : 『영조실록』 35권, 1733년(영조 9) 7월 22일. "내사시에 친림하여 권무 별군직 김성응을 전시에 직부하도록 명하다"

  • 주2

    : 시호 추증 : 『순조실록』 24권, 1821년(순조 21)8월 7일. "효의 왕후의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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