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입부(立夫).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좌의정 김국광(金國光)의 4세손으로,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김균(金鈞)이며, 어머니는 담양국씨(潭陽鞠氏)로 봉훈랑(奉訓郎) 국세인(鞠世仁)의 딸이다.
가계는 당시 사회의 대표적인 훈벌가문(勳閥家門)이었지만, 유복자였던 만큼 매우 궁핍하여 학문의 길에 나아갈 수 없었다.
이로 인하여 어려서부터 치산(治産)에 힘써 거만의 재부를 축적하여 당대의 거부가 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부족한 군량미를 많이 보충해주어, 국가로부터 여러 차례 관직이 제수되어 형조참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