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 때 집의(執義)·좌부대언(左副代言)을 역임하였다. 1376년(우왕 2) 지윤(池奫)이 부인에게 우왕의 유모인 장씨와 가깝게 지내게 하여, 권세를 부리고 뇌물을 받았다. 이때 김승득은 송제대(宋齊岱)가 지윤을 탄핵하려 하자 이를 알아채고 보고하여, 그를 지태안군사(知泰安郡事)로 좌천시켰다.
11월에는 임박(林樸)이 원 중서성에 올리는 글에 서명하지 않았고, 또 심왕을 옹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탄핵을 하여 유배를 보냈다. 12월에는 헌납 안정(安定)과 함께 익비(益妃)의 소생은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니 죽이자고 청하여 결국 이를 죽였다. 이듬해 4월 이인임이 지윤을 제거할 때 그 일당으로 몰려 청주에 유배된 뒤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