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병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79년 성균관의 사예(司藝)로서 원수(元帥)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 토벌에 참여하였으며, 1481년 사간,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승정원의 동부승지 · 우부승지 · 우승지 · 도승지와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이조참의로 재직 중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탄핵되어, 1487년 충청도관찰사로 전임되었다. 이듬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판결사(判決事)를 겸한 뒤 경상도 · 강원도의 관찰사, 호조 · 병조의 참판을 거쳐 1491년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예조참판을 거쳐 1493년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관리가 되어서는 사람의 뜻을 살피기에 힘써 특별히 마음을 써서 대접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는 사관의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시호는 공무(恭繆)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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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성화1년을유1월○일생원진사시방목(成化元年乙酉正月○日生員進士試榜目)』(한국국학진흥원[영덕 영양남씨 난고(蘭皐[南慶薰])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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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三(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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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공목 : 『성종실록』 278권, 1493년(성종 24) 윤5월 3일. "형조 판서 김여석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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