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광복군총영 결사대장으로 활동하며 일제 기관 파괴 및 일본 고관 처단 등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김영철(金泳喆)
  • 죽호(竹虎)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96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2년(고종 29)
  • 출생지평안북도 영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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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광복군총영 결사대장으로 활동하며 일제 기관 파괴 및 일본 고관 처단 등을 계획한 독립운동가.

내용

기독교인. 평안북도 영변 출신. 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김영철(金泳喆). 호는 죽호(竹虎). 아버지는 김윤홍(金允弘)이고 어머니는 이정신(李貞信)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소년기에 한학을 수학하였고, 미국인 선교사가 주재하던 미국인 선교사의 지도로 제2교회와 선교사가 경영하는 병원에 다니면서 영어와 성경을 공부하였다. 그 뒤 대한제국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1907년 군대해산 후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청년연합회의용대(大韓靑年聯合會義勇隊)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한독립단과 합류하고, 다시 광복군총영에 입대하여 결사대장이 되었다.

미국의원단이 1920년 7월(실제 방한 8월) 내한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국내의 일제 주요기관을 폭파하고 일본 고관들을 암살하라는 광복군총영장 오동진(吳東振)의 명령을 받고 김성택(金聖澤)·김최명(金最明)과 같이 무기를 소지하고 국내에 잠입하였다.

1920년 8월 21일 아서원(雅敍園)에서 조선총독부·남대문역·종로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거사에 대한 모의를 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경성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이후 3년을 감형 받아 1927년 9월 21일 만7년의 복역을 마치고 만기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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