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간, 대사성,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주서(注書) · 대교(待敎) · 봉교(奉敎) · 전적(典籍), 예조와 병조의 좌랑 · 정랑, 지제교(知製敎) · 정언(正言) · 헌납(獻納)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지내다가 1573년(선조 6)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1578년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동부승지 · 대사간 · 대사성 등을 지내고 이듬해 병조참의 · 승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수(李銖)의 옥사로 곧 파직되었다. 1582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형조참의 · 장례원판결사 ·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유생 박제(朴濟)로부터 음흉하다는 탄핵을 받아 외직으로 물러나 청송부사 · 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지냈다.
1589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성주로 돌아갔다. 그 해에 동생 김우옹(金宇顒)이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연좌되어 안동의 임지에서 회령으로 귀양가자, 영천으로 달려가 동생을 만나 갓과 옷을 벗어주고 시 한 수를 지어 주며 이별했다 한다.
대사간으로 있을 때 사사로이 옥송(獄訟)을 결정한 형조판서를 당당히 탄핵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상주 속수서원(涑水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개암집(開巖集)』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창석유고(蒼石遺稿)』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석담일기(石潭日記)』
-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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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가정31년임자사마방목(嘉靖三十一年壬子司馬榜目)』(성균관대학교 존경각[B13KB-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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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七(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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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박제의 탄핵 : 『선조실록』 17권, 1563년(선조 16) 9월 6일. "유생 박제가 시사를 극론하고 김효원·김응남·서인원 등을 지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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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김우굉 저술 : 『개암집(開巖集)』(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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