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명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감찰집의, 판도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368년(공민왕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도판서|상장군|삼사좌사응양군상호군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천식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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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감찰집의, 판도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중찬(中贊) 김지숙(金之淑)의 손자이며, 찬성사(贊成事) 김인연(金仁沇)의 아들이고, 김속명(金續命)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55년(공민왕 4) 감찰집의(監察執義)를 거쳐, 이듬해 상장군이 되어 반역을 일으킨 기철(奇轍) · 권겸(權謙) · 노책(盧頙) 등을 제거한 공으로 1359년 주기철2등공신(誅奇轍二等功臣)에 서훈되었다.

1361년 홍건적이 쳐들어와 개경을 점령하였을 때 판도판서(版圖判書)로서 왕을 모시고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까지 호종하였으며, 다시 상장군으로서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 수복경성1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과 신축호종2등공신(辛丑扈從二等功臣)에 책록되었다.

그리고 김원명이 천거하였던 신돈(辛旽)이 왕의 총애를 받자 1365년 삼사좌사응양군상호군(三司左使鷹揚軍上護軍)에 제수되어 8위(八衛) 42도부(四二都府)의 병권을 장악하였다.

1367년에 오인택(吳仁澤) 등과 함께 신돈을 제거하려는 모의를 하였으나, 발각되어 경상도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1368년에 신돈의 당류(黨類)인 손연(孫演)에 의하여 장살(杖殺)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백씨통보(百氏通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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