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문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대부윤, 비서소윤,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286년(충렬왕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부윤|비서소윤|판삼사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민병하 (전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후기에, 대부윤, 비서소윤,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250년(고종 37) 평장사(平章事) 임경숙(任慶肅)이 주관한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였다. 1269년(원종 10)에 세자 왕심(王諶: 忠烈王)이 원나라에 갈 때 학유(學諭)로서 서장관이 되어 따라갔다.

이 때 임연(林衍)이 원종(元宗)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倡)을 옹립했는데, 세자의 요청으로 원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그 사실을 힐문하고 임연을 토벌하기로 결정하자, 김응문도 원나라의 사신과 함께 귀국하여 왕을 복위하게 하였다. 1275년에 충청도안찰사(忠淸道按察使)가 되었으나 왕의 뜻을 거슬러 파면당하였다.

1276년에 원나라에서 귀부군(歸附軍) 5백인에게 장가들게 하기 위하여 여자를 요구하자, 과부처녀추고별감(寡婦處女推考別監)이 되어 전국에서 여자를 징발하였다. 뒤에 대부윤(大府尹)이 되었다가 1282년에 앞서 세자를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1283년에 비서소윤(秘書少尹)으로 국자감시(國子監試)의 시관이 되어 시(詩)·부(賦)에 이부(李榑) 등 38인을, 십운시(十韻詩)에 이응(李膺) 등 22인을 뽑았으며, 뒤에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