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경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왕경유수병마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정숙(貞肅)
이칭
김양경(金良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68년(의종 22)
사망 연도
1235년(고종 22)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왕경유수병마사|정당문학 이부상서 감수국사|중서시랑평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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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왕경유수병마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첫 이름은 김양경(金良鏡). 양신공(良愼公) 김의진(金義珍)의 4대손이며, 아버지는 합문지후를 지낸 김영고(金永固)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명종 때 문과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직사관(直史官)을 거쳐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고종 초 조충(趙冲)이 강동성(江東城)에서 거란군을 토벌할 때 판관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 때에 세운 공은 원나라 장군들까지도 김인경의 진용이 정숙함을 감탄하여 상좌에 모시고 위로의 연회를 베풀어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예부낭중을 거쳐 추밀원우승선이 되었으며 1227년(고종 14)에는 수찬관(修撰官)으로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그 해에 동진(東眞)의 군대가 정주(定州)·장주(長州)로 쳐들어오자 지중군병마사가 되어 의주(宜州: 지금의 함경남도 德源)에서 싸웠으나 대패하여 상주목사로 좌천되었다.

얼마 뒤 형부상서·한림학사에 오르고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인재를 취하였다. 이어 지추밀원사 상서좌복야(知樞密院事尙書左僕射) 등을 역임하였다.

1232년 강화천도 이듬해 왕경유수병마사(王京留守兵馬使)가 되고 정당문학 이부상서 감수국사(正堂文學吏部尙書監修國史)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에 이르렀다. 문무를 겸하였으며 일반행정에도 뛰어나 여러가지 재능을 겸비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시사(詩詞)가 청신하고 당대에 유행하는 시부를 잘하여 세상에서 ‘양경시부(良鏡詩賦)’라고 칭송하였고, 서체는 예서에 뛰어났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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