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9년(충숙왕 복위 8)에 충혜왕을 제거하고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를 왕으로 옹립하려던 조적(曺頔) 등의 음모가 실패하고, 조적 잔당의 참소로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 왕을 시종하였다. 이 시종의 공로로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이등공신으로 책봉되고, 토지 70결과 노비 5구를 받았다. 벼슬은 대호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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