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염주(鹽州: 지금의 황해도 연백).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고 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하였을 때, 검교중랑장으로서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나와 있다가 스스로 만호라 일컬으며 주민을 이끌고 적병 140여 명을 베어 전공을 세웠다.
홍건적의 방문(榜文)을 빼앗아 최영기(崔英起)·오영경(吳永卿)으로 하여금 왕에게 바치게 하고, 그 공로로 상장군 겸 만호(上將軍 兼 萬戶)에 임명되어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이듬해 교주도병마사(交州道兵馬使)가 되어 홍건적을 방어하였으며, 이어 상호군이 되었다. 1363년 김용(金鏞) 일당이 행궁을 습격하여 왕을 시해하려고 난을 일으켰을 때 밀직사 최영(崔瑩)을 따라 적들과 싸우다가 살해되었다. 난이 평정된 뒤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